출애굽기 22장 배상에 관한 법
배상에 관한 법(출 22:1-17)
21장이 형사법이라라면, 22장은 소유권 침해와 관련된 배상 규정이다.
소유권 침해에 관련하여 배상으로 처벌하는 규정.
절도에 관련된 배상(22:1-4)
22:1(소나 양의 경우) 비교. 22:4(2배)
차등을 두고 있다. 소가 더 값비싸기 때문에.
22:4에서는 2배, 어떤 차이일까? 의도성과 계획성의 유무에 따라 배상이 달라지고 있다.
1절 - 의도적이고 계획적. 그것은 잡아서 파는데 그 행동으로 입증이 되고 있다.
4절 - 충동적. ‘살아 그의 손에 있으면’ 충동적, 아직 팔지 않았다. 충동에 의해 도둑질을 했는데, 하고 나서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참고. 레 6:2-5(1 + 1/5). 스스로 자백할 경우.
두 배도 아니고, 20 %만 더 지불하면 된다. 레6장은 스스로 고백하는 경우.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규정들을 통해서 가능하면 남의 것을 훔쳤더라도 자발적으로 회개하고 배상하도록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들키면 최소 2배, 계획성 있다고 생각하면 4-5배, 굉장히 합리적이다. 동기까지 보신다. 이것이 세상 법정 판결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2-4절 정당 방위 관련
도둑을 죽여도 살인죄라는 것이다. 그런데 밤중에 도둑이 들어오는 경우는 정당방위로 여겨서 살인죄로 여기지 않는다. 자기 생명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낮에 도둑이 들어오면 도둑을 죽이지 않고도 처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렇게 세부적인 부분까지도 하나님은 규정을 제시해 놓고 계신다. 도둑도 하나의 인격체라는 것이다. 도둑도 그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인격체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밭이나 포도원의 피해와 관련된 배상(22:5-6)
농경 사회와 관련된 규정
22:5(자신의 짐승이 남의 밭이나 포도원에 피해를 입힌 경우)/부동산
22:6(불이 나서 곡식에 피해를 입힌 경우)/ 부동산
물품에 관한 배상(22:7-15)/ 동산
22:7-8(맡긴 물건을 도둑맞은 경우)
① 도둑이 잡힌 경우(7절)
② 도둑이 잡히지 않은 경우(8절)
재판장(히. 엘로힘; 8절)
22:9(재물에 관한 소유권 다툼) ⇨ 재판장이 판결함.
22:10-13(이웃에게 맡긴 가축이 죽거나 상해를 입은 경우)
① 죽거나, 상하거나, 끌려갔는데 본 사람이 없는 경우(10-11절).
② 자신의 실수로 도둑맞은 경우(12절)
③ 사나운 짐승에게 찢긴 경우(13절)
처녀의 성폭행에 관련된 배상(22:16-17)
“사람이 약혼하지 아니한 처녀를 꾀어 동침하였으면 납폐금을 주고 아내로 삼을 것이요...”
납폐금(히. 모하르).
일종의 지참금. 아내를 데리고 올 때는 장인에게 지참금을 지불하는데, 노동력 상실에 대한 하나의 보상의 차원으로 지불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특수한 상황에 해당되는 규정. 불명예를 앉고 살아가는 것보다 그 남자와 사는 것이 낫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처녀성을 잃은 여자가 다른 남자와 살기는 어렵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남자와 살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딸의 아버지가 주기 싫으면 안 줘도 되는데, 그 남자는 아버지에게 납폐금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상숭배와 간음 금지법(출 22:18-20)
간음이란 주제로 연결되어 있다. 우상숭배는 영적 간음, 간음은 육체적 간음.
우상숭배 금지(22:18, 20)
야훼 신앙의 배타성
오직 야훼 하나님만이 참 신이시다.
18절 “너는 무당을 살려두지 말라”
무당은 점쟁이. 레위기에서는 신접한 자, 박수, 레위기에서는 다르게. 죽여야 한다. 추종해서는 안 된다. 그들을 추종하는 행동은 자신을 부정케 하는 행위라고 말하고 있다. 미래에 대한 관심이나 염려 때문에 점쟁이, 무당을 찾는 것이다. 실재 미래를 알까?
죽은 자의 영과 접촉한다고 믿고 있다. 구덩이를 파 놓고 음식을 넣어 두면 죽은 자의 영이 그것을 먹으로 올라온다고 생각하고, 그런 식으로 접촉함. 이런 이들을 찾는 이유는 미래를 알고자 하는 호기심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행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래는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귀신도 미래는 모른다. 미래는 하나님의 영역이다. 우리 미래를 귀신도 모른다. 현재는 우리의 영역. 미래는 하나님의 영역. 하나님은 우리가 현실에 충실하기를 원하신다. 알아봐야 우리에게 좋을 것 하나도 없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 운명론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들.
예정론과 운명론은 많이 다르다.
20절 “여호와 외에 다른 신에게 제사를 드리는 자는 멸할지니라(히. 헤렘).”
헤렘(진멸). 비교. 신 7장. ‘가나안 족속을 진멸할 것.’
신명기 외에 헤렘이 사용된 경우는 제한적인데 출애굽기는 여기서.
헤렘은 그냥 죽이는 것보다는 좀 더 강한 의미이다. 죽이고 그 사람에게 소유된 것들까지 다 파기, 하나님께 돌리는 것. 우상숭배자들은 진멸의 대상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에 공의의 심판을 가했다. 그 방법이 헤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상을 섬기면 그들도 헤렘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성경을 말하는 것이다.
간음 금지(22:19)
“짐승과 행음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히브리어 원문- 짐승과 함께 눕는 자는 죽일지니라.
오경 율법 가운데 동성연애, 수간 종종 언급되는데, 가나안 땅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특별히 레위기 규정에 의하면 동성연애, 짐승과 관계하는 것은 부정한 행동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르는 것이기 때문에. 거룩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 거룩이다. 그 질서를 거스르는 것은 부정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레위기는 거룩에 관점에서, 동성연애, 수간을 금지하는 것이다.
동성연애에 대한 부분이 뜨거운 이슈라서 이 부분은 교회 안에서 말하기 조심스러워진 것 같다. 물론 신학자들 가운데서도 동성연애를 옹호하는 자들이 있는데,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말하는지 알 수 없다.
레위기 규정에 의하면,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거스른 것으로 본다. 옹호하는 근거보다는 하지 말라는 강하게 금지하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약자 보호 규정(출 22:21-27)
인도주의 규정.
22:21(이방 나그네 보호)
나그네(히. 게르)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방인들. 이주민들.
순수 이방인이었다가 게르로 되었다가 이스라엘 백성 되는 과정으로 보면 되겠다. 학대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이스라엘 백성들도 나그네였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너희도 경험해 봤지 않느냐는 것이다. 너희들도 이전에 그런 위치에 있었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이 규정을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면, 우리 사회는 게르와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이주민들, 외국인들, 노동자들, 탈북민들.. 모두 게르다. 구약성경에서 다 땅이 없는 사람들이다. 땅이 있어야 독립적 생활 가능하다.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선교의 절호의 기회다.
출애굽 공동체의 이상
억압과 착취의 기반에 둔 애굽, 가나안과는 다른, 평등한 관계에 기초한 신앙 공동체이어야 한다. 이것이 구약 성경이 말한 하나님 백성들의 모습이다. 하나님은 가나안에 이런 공동체를 세우고 싶으셨다.
22:22-24(과부와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 것)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의지할 대상이 없는 사람들. 나그네와 더불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봐 주어야 할 약자들. 하나님이 그들의 심판자, 재판관이 되어 주겠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의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나도 그런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사람 미래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22:25-27(가난한 자 보호 규정)
① 이자를 받지 말 것(25절)
이 규정은 레 25장에도 나오는 규정. 네 형제- 레위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형제라고 부르고 잇다. 여호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가족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이 규정을 지켜서 동족들에게는 이자 받지 않는 걸로 알려져 있다. 교회 안에 어려운 사람을 빌려 줄 경우는 그냥 빌려주는 것이 좋다. 못 받을 각오로. 여력이 안 될 경우는 안 빌려 주는 것이 좋다. 이런 공동체가 되면 좋겠다. 우리 교회가 우리 공동체가 어때야 될지 도전을 받는 것이다.
② 전당 잡은 옷은 해가 지기 전에 돌려줄 것(26-27절)
인도주의적 규정. 옷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걸치고 다녔던 넓고 긴 천. 온몸을 감싼 방식으로 입고 다녔다. 그 옷이 유일한 옷이라..... 이 옷을 감고 있다가 밤에는 이불로 사용. 일종의 생존권, 기본권과 관련된 규정. 침해해서는 안 된다.
27b절 ‘나는 자비로운 자임이니라.’
결국 궁극적인 재판관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온 우주의 재판관. 하나님의 성품을 자비하신 성품으로 표현하고 있다. 율법 안에는 하나님의 성품이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야 한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방식이다. 왜냐면 그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잇기 때문이다. 기회가 있는 대로 우리는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데 힘써야 한다.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하나님께 돈 빌려 주는 것이다.
종교법(출 22:28-31)
22:28(재판관 저주 금지)
“너는 재판장(히. 엘로힘)을 모독하지 말며 백성의 지도자를 저주하지 말지니라.”
엘로힘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그래서 계약 법전 안에는 제사장, 재판장을 엘로힘으로 표현해서, 원문만을 볼 때는 구분이 안 간다. 의미는 제사장, 재판장은 하나님이 세워 준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들의 결정은 하나님의 결정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권위에 대한 올바른 태도. 하나님께서 공동체를 세우실 때는 반드시 공동체에 필요한 권위도 반드시 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에 순종해야 한다. 내가 세우려고 하면 권위주의. 하나님이 주시면 권위.
22:29-30(헌물과 초태생 규정)
헌물- 하나님께 드리면서 인색하게 드리는 것을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원하는 마음. 자발적인 헌신,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신다. 억지로 하는 것은 헌신 아니다. 강요에 의한 것은 헌신 아니다. 그래야 헌신이다. 그래야 그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것이다. 우주에 있는 것이 다 하나님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 복이 되기 때문이다.
초태생- 이스라엘 백성 경우는 죽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대신 그것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몸값을 지불하고 사셨다. 그래서 초태생은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문자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몸값을 드리는 것이다. 가축의 초태생을 바칠 때는 일주일 동안 어미와 새끼가 같이 있도록 해줘야 한다.
고대 근동에는 이런 규정이 없다. 가축의 입장까지 헤아려 주는 것이다. 엄마 입장에서는 얼마나 불쌍할까. 새끼를 엄마 품에서 빼앗아 가면 동물인 듯 좋겠는가? 동물도 감정이 있는 것이다. 새끼랑 헤어지면 동물도 슬프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은 가난한 자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형편도 배려할 것을 말하고 있다. 동물의 생명도 결국 하나님께 있는 것이다. 그것도 창조 신학에 기초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과 동물을 만드셨다.
22:31(부정한 음식을 멀리할 것)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
출 19:5-6 이스라엘의 부르심.
‘짐승에게 찢긴 동물의 고기’
피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의적으로 부정하다. 부정을 멀리해야 한다. 거룩과 부정은 같이 할 수 없다. 물론 이것은 제의적 차원에서 말하고 있는 것인데, 비슷한 규정이 레위기에서 나온다.
레 17:15 vs 신 14:22
어떤 규정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삶의 환경이 바뀌면서 규정도 조금씩 바뀜.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그것을 줘서 먹게 하라. (신명기). 신명기는 출애굽기 규정보다 좀 더 인도적인 규정이 많다.
다읫- 아비멜렉이 진설병 줬을 때 먹으면 안 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잘못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예언자들의 사상. 제의보다는 인도주의적 정신. 자비의 실천이 더 우선이다. 성경의 율법 규정을 우리가 어떻게 적용하고 해석할 것인가의 하나의 예.
이스라엘 백성이 제의 규정을 지키는 이유는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 부정한 것을 멀리해야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