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서론
갈라디아서는 바울이 자신이 세운 교회들 가운데서 갈라디아서 교회들에게 보내졌다. 교회들 가운데서 자신의 사도권과 자신의 복음에 직면한 위기에 대해 기술했다. 짧지만, 복음의 핵심을 가장 명료하고 강력하게 제시해 주는 책이다. 이런 점에서 갈라디아서의 신학적 중요성은 대단하다. 갈라디아서 본문을 살피기에 앞서, 그 해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배경, 이 편지의 기원에 대한 몇 가지 상황을 정리해 보자.
저작 동기
바울이 떠난 다음에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이 교회들을 방문해서, 그 복음만으로는 부족하며 거기에 율법을 행하고 할례를 받는 것이 구원에 필수조건이다 라고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이 주장했던 것으로 보인다.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그래서 바울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그의 사도적 권위에 대해서도 도전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어떤 이들은 또 다른 극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울이 선포한 복음이 가져다 준 ‘자유’를 잘못 이해하고 윤리적 방종에 빠진 이들도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두 가지 상반된 문제에 대한 소식들을 듣고, 그 문제들을 당장 교정해 줘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서둘러서 서신을 보냈던 것으로 보인다.
1절
1절을 보면 <사람들로 부터나 사람을 통하여가 아니라> 두 번의 반복을 통해서, 전치사, 복수 단수의 변화를 통해, 그러면 어떻게 주어진 것이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버지를 통하여. 바울이 사도임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바울은 사도다. 그 사도가 어떻게 된 사도냐... 사람들로부터가 아니고, 사람을 통해서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 아버지를 통하여 된 것이다. 사도의 기원을 이야기한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로 분명히 규정한다. 사도는 문자적으로는 보냄을 받은 자 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직책은 신약성경 안에서 세 부류의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1)예수님의 열 두 제자, 2) 열 두 제자를 제외한 몇몇 초대교회 지도자들- 야고보, 바울 3) 여러 교회들의 대표들(고후 8:23) - 아주 예외적 용례, 그런데 우리 개역개정을 보면, <사자들>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사도들이다. 이 세 번째 용례는 기능과 관련된 표현으로 보인다. 어떤 평범한 단어적 의미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두 용례는 초대교회 내에서 교회의 기초를 이루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제한된 사람들에게만 붙여주는 직함이었다. 단순한 기능적 의미가 아니라 지위로서의 고유한 역할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자신이 이 특별한 직책을 가진 자 라는 사실을 서신 몇 앞에서 밝히고 있다. 바울은 사도라는 직위를 자신에게 15번에 걸쳐 사용하고 있다. 바울은 사도라는 단어 자체는 34번에 걸쳐 사용하는데 자신에게 15번 적용한다. 더욱이 그는 자신의 사도직이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직접 주어진 것임을 분명히 한다. 아마도 그는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맨 앞에서부터 확실하게 바로 잡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모든 문제의 근원을 사도직의 권위로부터 확실히 하고자 했던 것 같다.
바울이 자신의 사도직을 강조하는 것은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함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그는 하나님을 소개하면서 그 분을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신 분으로 소개한다. 예수님을 죽은 자로부터 일으키신 분이시다. 이는 그리스도의 복음 이해에 있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핵심을 이루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이 사역, 그분의 죽음과 부활 사역은 그 분 한분만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공동 사역이었음을 확고하게 보여준다.
2절 상반절 ‘나와 함께 있는 모든 형제들은’
바울은 이 편지를 자신과 함께 보낸 자들이 있음을 밝힌다. 그들을 모든 형제들이라고 지칭하는데, 그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는다. ‘모든’은 포괄성을 부각한다. 예외가 없다. 그의 독단적 사상을 전달하는 편지가 아니라, 그의 동료들 모두가 공감하는 공동체적 진리를 담고 있는 공적인, 권위를 가진 편지임을 시사한다.
인사, 기도 영광송(1:3-5)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분이시다. 바울은 이 기원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한 마디로 소개한다. 앞서 하나님을 소개함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주제였는데, 여기서도 바울은 한 마디로 그리스도의 희생이다. 자신을 주신 분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죄에 대한 책임을 대신 지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시키셨다. 바울이 이 서신에 기술할 갈라디아서 복음의 핵심은 율법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죽음에 관한 것이었다. 그 죽음의 의미와 가치를 설명하기 위해서, 갈라디아가 직면한 율법을 논의할 뿐이다. 실재 주제는 그리스도의 죽음, 그 죽음을 통한 복음이다. 갈라디아서를 읽을 때 초점은 율법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에 맞추어져야 한다.
'우리를 당면한 약한 시대로부터 구출하시기 위해'
예수님의 죽음이 구출적인 측면이 있음을 확고히 밝혀둔다. 어디로부터인가? 당면한, 현재에 존재하는, 직면해 있는 악한 시대로부터의 구출, 시대는 시간적 의미보다는 ‘세상’을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으로부터 구출되어야 함을 분명히 한다. 그리스도께서 이것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허용하신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계획하시고 뜻하신 것이다.
갈라디아 교회의 문제: 다른 복음(1:6-10)
6절
바울은 이 직설적 책망에서 두 가지 복음을 대조시킨다. 먼저 바울이 전한 복음은, 하나님께서 갈라디아 성도들을 그리스도 은혜 안에서 부르신 결과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들을 부르심으로 그들에게 전적으로 은혜로 주어진 것이다. 스스로 간절히 추구했기 때문에 그들이 발견한 것도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아무런 자격도 없는 죄인이었을 때, 복음을 추구할 분별력도 가지고 있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그들에게 선물로 주어진 은혜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부르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바울은 그런데 이러한 은혜가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밝힌다.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를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를 죽음에 이르게 하셨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예수님이 그 값을 지불하셨음으로 하나님의 은혜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으로부터 이처럼 빨리 떠나고 있다. 바울은 긴급히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급히 이 서신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바울은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 복음을 떠나 만난 것을 다른 복음으로 규정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에 율법의 행위를 덧붙이려 하는 가르침으로 보인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떠나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복음은 전적인 은혜로 주어진 것인데, 인간의 공로를 덧붙이는 것은, 전적인 은혜를 거절하고, 하나님 자신을 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7절
6절에서 다른 복음을 아주 차단하려는 의도이다. 바울의 적대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다른 다양한 복음 중 하나가 아니라는 것이다. 실재로 복음은 단 하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라는 것이다. 바울은 대적자들이 전하는 것은 그리스도 복음의 다른 형태가 아니라, 아예 복음 자체가 아니다. 복음을 풍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떠나는 것으로 바울은 보고, <단지 너희를 괴롭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어떤 자들이 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의 가르침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질시키는 것이다. 갈라디아 성도들이 그릇된 가르침에 미혹을 당하여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떠나는, 하나님 자신을 떠나는 위험에 직면해 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의 문제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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