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으로는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함(3:1-18)
갈라디아 성도들의 경험(3:1-5)
<1절> 갈라디아 교인들이 복음을 전달받을 때 들었던 내용을 확인해준다. ‘십자가에 못 박히다’는 현재형으로, 사건은 과거인데 동사는 현재형을 쓰면서, 그의 죽음이 현재 그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십자가 사건은 먼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현재 갈 성도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라는 의미이다.
그분의 죽음이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에, 그분의 십자가 죽음 이외의 어떤 다른 요소도 그리스도인의 칭의에 기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2절> 갈라디아서에서 성령의 역할은 그리스도인의 삶과 관련해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개종한 시발적 사건에서부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성령으로 시작하고 성령으로 귀결된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들과 믿음의 반제적 구조를 여기서도 그대로 사용한다. 성령을 받는 것에 대해 동일한 구도를 사용한다.
칭의의 사건을 바울은 성령을 받는 사건과 긴밀하게 연관시킨다고 볼 수 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의롭다 함을 받을 때, 모두가 성령을 받았음을 전제로 하고 있는 듯하다. ‘의롭다 함을 받는다’와 ‘성령을 받음’을 따로 떼 놓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5절> ‘그러므로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안에 능력을 행하시는 분께서, 율법의 행위들로 가 아니라 들은 것을 믿음으로 그렇게 하신다.’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삼위 하나님을 통해 어떻게 작용하는가? 바울은 하나님께서 두 가지를 행하신 것으로 기술한다. 3:2절의 내용을 그대로 가져오고, 성령을 하나님이 주셔서 받고, 그 결과 우리 가운데 능력이 생긴다.
아브라함의 믿음(3:6-14)
바울은 갈라디아에서 아브라함을 매우 종요한 본보기로 사용하며 9회 언급한다. 바울은 앞서 인간이 율법의 행위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확언했는데, 이제 아브라함의 예를 들어 그 사실을 창 15:6을 들어 확증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여기에서 믿음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다. 동사가 사용된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인정받은 것은 그의 특정 행위나, 그 당시 존재하지도 않은 율법 행위들로 인함이 아니었다.
바울은 한걸음 더 나아가 믿음을 가진 자들은 믿음을 가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으며(7절). 그 대상으로는 이방인도 제외되지 않음을 8절이 확언한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방인들의 믿음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를 설명한다. 아브라함 안에서 모든 이방인들이 복을 받을 것이다. 이 축복의 약속을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미리 선포된 복음으로 이해한다. 이스라엘 역사가 흐르면서 한참 이후에 주어진 축복이 아니라, 처음 부르실 때부터 계획된 것이었고, 그 축복을 받는 유일한 조건은, 아브라함이 의롭다 함을 받은 그것, 믿음 때문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련의 구약 인용을 통한 논증(10-14절)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켜야만 저주를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 인용구를 통해 율법의 행위들에 속한 자는 누구든지 저주 아래 있음을 입증한다. 그것은 인간이 율법을 전체적으로 지킨다는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렇다면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지 않는 자는 모두 저주 아래 있다는 것은, 누구나 저주 아래 있다는 결론을 가져온다. 율법을 행위들을 통해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자들은. 이제 율법으로는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 분명하다(11 상절). 하나님 앞에서 아무도 율법으로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다음 인용구를 통해 보완적으로 입증해간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박국 선지자는 인간이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믿음으로’라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 하지만 ‘율법은 믿음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12 상절).라고 선언한다. 그것을 12 하반절이 확인해 준다. 율법에는 은혜의 여지가 없다. 오로지 행함으로써만 살 수 있다. 율법은 그것을 행하는 자에게는 생명을 주지만, 그것을 다 행하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를 받도록 할 뿐이다.
그렇다면 믿음은, 그 믿는 자에게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는 은혜를 베푸는가? 는 질문이 생긴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속하심으로 주어진 것이다(13 상절). 율법이 제공할 수 없는 은혜, 그것이 어떻게 주어지는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한 저주가 됨으로 가능했다.
그 결과 우리를 율법의 저주로부터 구속, 구출하셨다. 그런데 이 은혜의 원리를 구약으로부터 이미 예언되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성취하셨다. (신 21:3) <14절> 바울은 약속이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언급한다. 그리고 이후로 3:15-4:31에서 논의의 핵심으로 사용해 간다. 약속은 복음과 축복의 유사 개념으로 사용된다.
3 아브라함 언약(3:15-18)
바울은 본 단락에서 앞서 도입된 ‘약속’ 개념과 관련해서 두 가지 사실을 논증한다. 첫째, 사람의 언약도 폐하거나 더하지 못하는데(15절), 하물며 아브라함에 대한 하나님의 언약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17-18절). 더욱이 아브라함에게 언약이 정해진 뒤에 430년(출12:40)이 지난 후에야 율법이 주어진다. 그런데 이 율법이 아브라함의 언약의 약속을 무효로 만든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은 믿음의 약속이다. 그 원리는 율법 이전부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라는 것이다.
둘째, 아브라함의 언약의 약속은 한 사람만 염두에 두었는데, 바로 그리스도시다 16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할 때, 그 목표가 딱 한 사람, 그리스 도시다. 이 약속의 유업은 율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약속에서 난 것이다. 따라서 430년 후에 생긴 율법은 그 약속의 유업과 아무런 상관도 없음이 18절의 결론이다.
한편 바울은 이 약속이 그리스도의 소유가 된 그리스도인들도 그 아브라함의 약속의 유업을 물려받게 됨을 29절에서 확실하게 선언한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도 아브라함의 약속받은 유업을 그대로 물려받음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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