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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갈라디아서 4장 종이 아니라 아들

by 독거할매 2021. 3. 12.

종이 아니라 아들(4:1-7)

앞 단락에 상속자 개념이 여기서는 무엇이 뜻하는가 논점을 이어 전개해 간다. 바울은 3:29에서 아브라함과 의 관계 속에서 상속자 주제를 도입했었다.

2021.03.12 - [말씀] - 갈라디아서 3:19-25 율법의 기능과 목적

 

갈라디아서 3:19-25 율법의 기능과 목적

 율법의 기능과 목적(3:19-25) 지금까지 율법의 한계와 부정적 기능을 부각해 온 바울은 율법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던진다. 바울은 이 질문에 대해 율법의 기원부터 밝혀 나간다. 그것은 범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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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단락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상속자 주제를 발전시켜 나간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의 발전은 3:26-29에서도 내재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과 아브라함의 씨가 되는 것의 상관관계를 밝혔다. 아브라함의 씨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오기 전에 상속자들이 처한 상태를 <귀족 집안의 아들 상황>으로 설명한다. 모든 것의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가 정항 때까지는 청지기와 종의 후견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도 어렸을 때 하나님이 정하신 때까지는 세상의 기본 요소들에게 종노릇했다고 이야기한다.

 

<5절>의 하나님의 이러한 행동의 두 가지 목적은 첫째,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여 해방시키기’(evxagora, sh|) 위함이다. 둘째, 우리가 ‘아들 신분을 받도록’(th.n ui`oqesi, an avpola, bwmen) 하기 위함이다.

 

<6절>은 그 순서가 완전 바뀌어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을 받은 것으로 한다. 이러한 순서의 다양성은 아마도 바울이 성령 받음과 아들 신분 받음 사이의 관계를 시간적 순서 관계로 이해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 같다. 오히려 둘 사이의 긴밀한 상관관계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6절에서 보면, 1인칭 복수가 2인칭 복수로 바뀐다. 그것은 아마도 ‘너희’ 문제를 다룬 3장의 논점을 이어받고 있음을 시사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6절은 지금까지 성령과 아들 신분 상이의 관계를 종합해서 결론 맺고 있다. 아들들에게 주어진 성령의 기능은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음으로 주어진 관계를 확증해 준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라는 것이다.

 

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 그것을 성령께서 가능케 하신다는 것.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짖는 부르짖음은 예수님의 고유한 특권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과 연합한 자는 바로 하나님께 향한 예수님의 이런 호칭도 공유케 됨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끝으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로는 갈라디아 성도들이 더 이상 종들이 아니라 아들들임을 7절에서 결론으로 확증해 준다. 아들이면 당연히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성령이 확증해 준다.

 

 갈라디아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염려(4:8-11)

바울의 염려가 목회적으로 서술된다. 바울은 지금까지의 교리적 논의를 마무리하고 그 결론을 수신자들의 실제 상황에 적용한다. 그렇다면 바울이 갈라디아서의 추구하는 궁극적 목적은 자신의 신학적 논의를 적립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결론을 수신자들에게 적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논점에 비추어 볼 때 갈 성도들은 어린아이의 상태를 벗어나, 성장한 자들임이 분명하다. 이제는 성장한, 자유를 누리는 아들들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세상의 기본요소들로 포현된 율법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고, 바울은 이들이 율법으로 돌아가는 요소들, 하나하나 예를 든다. 날들, 달들, 절기들, 해 들. 네 가지 표현들이 의미하는 바는 쉽지는 않지만 아마도 안식일, 신월, 안식년, 신년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키다는 동사는 현재형 동사이다. 아마도 이들이 유대적 전통을 지금 따르고 있음을 확인해준다. 바울은 그들의 행동들이 얼마나 심각한 결과들을 가져올 수 있는지 경고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셨는데도, 어린아이가 아니라 성장한 어른이 되었는데도, 그들이 아직도 그 기본 요소들에 젖어 있다, 지키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11절에 그래서 ‘나는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을까 두려워한다’라고 말함으로, 바울의 구원론을 밝힌다. 그러면서 바울은 갈 성도들에게 개인적으로 호소한다.

개인적 호소(4:12-20)

이제 이 적용적 권면에 이어 그 권면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그들과의 친밀한 관계에 기초한 강력한 호소를 담는다. 바울은 수신자들과 자신과의 과거 친밀한 관계와 현재 안타까운 그들의 태도 사이의 대조를 보인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왜곡하여 율법의 행위들을 부각하는 적대자들의 열심은 갈라디아 성도들을 설득하였고(17절), 그 결과 그들은 그 설득에 넘어갔던 것이다(16절).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자신이 처음에 갈라디아에 갔을 때, 그들이 그 자신과 복음을 얼마나 헌신적으로 따뜻하게 영접하고 받아들였는지를 되새겨 준다(13-15절). 이런 성도 간의 사랑, 신뢰를 상기시킨 바울은 18절 이하에서 가감 없이 표현한다. 그들을 향한 열정과 애정을 출산하는 여인의 상징으로 활용한다.

 

바울은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면 수고와 고통, 투쟁까지도 기꺼이 감수하겠다, 수신자들이 자신을 위해서 눈이라도 빼어주려고 했던 것처럼, 이제는 자신이 해산하는 고통을 감수하겠다는 심정을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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