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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출애굽기 19장 시내산 계시

by 독거할매 2021. 4. 5.

출애굽기 19장(시내산 계시)

출애굽 사건의 목표는 언약을 맺는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불러냈는가? 해방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언약을 맺기 위한 것이고, 그 언약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이다.

 

시내산 도착(출 19:1-2)

'애굽 땅을 떠난 지 3개월이 되던 날(1절)’

‘개월(히. 하다쉬)’


달의 시작을 가리킨다. 3개월이라는 의미는 3월 1일이라는 것이다. 출애굽이 1월 14일에 있었고(유월절), 지키자마자 떠나 나온 것이다. 그러면 시내산에 하나님께서 현현하신 사건은 출애굽 이후, 50일째다. 이런 배경에서 유대 전승은 오순절을 시내산의 율법 수여를 기념하는 날로 지킨다. 칠칠절, 맥추절, 오순절 다 같은 날이다.

 

시내산의 위치

르비딤은 아말렉과 전투를 벌인 지역.
하나님께서 여기서 물을 반석에서 내셨던 기적의 장소이기도 하다. 산 앞은 시내산 근처를 말한다. 일 년 동안 이곳에서 머물게 된다. 시내산의 위치는 학자들이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시내반도 남쪽으로 보고 있다. 사실은 정확하게 모른다.
그러나 세일산, 에돔 근처의 지역이 아닐까 학자들은 추측하기도 한다. 헤밀턴은 모세의 무덤과 더불어 시내산의 위치를 감추셨다. 우리로 하여금 시내산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알지 못하게 하셨다. 왜냐면 그것을 우상처럼 여길까 봐. 중요한 것은 지리적 위치보다 신학적 위치가 더 중요하다. 갔다 왔다고 믿음이 성숙해지는 것도 아닌 것 같다. 힘만 든다. 그렇지만 하나님 말씀 속에서 하나님도 만나고 믿음도 신앙도 성숙해간다.

 

언약의 예고와 목적(출 19:3-8)

19:3(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기 위해서(올라가는 이유,목적). 모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워졌는데 사실은 고생 엄청 한 것이다. 40년 동안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는데 인간이 경험하기 어려운 많은 고난을 받았다. 달리 모세가 아닌 것이다. 시내산 = 계시의 장소.


이스라엘 종교의 진원지. 모세는 여호와 종교의 기초를 놓은 사람으로 볼 수 있다. 유대인의 전승에 의하면 모세는 반신이다. 하나님은 아니지만 인간도 아니다. 그 중간에 위치시켜 놓았다. 그만큼 모세의 위치는 유대인들에게 있어 절대적이다. 모세 잘못 건드리면 돌에 맞아 죽는다.

 

언약의 목적(19:4-6)

19:4(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보았다는 것은 체험했다는 것이다. 이 백성들에게 베푸신 구원의 은혜를 상기시키는 것이다. 시내산 언약이 하나님 은혜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항상 은혜가 먼저다. 이것이 중요하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그 은혜에 대한 반응으로 지키는 것이다. 이 순서가 바뀌면 율법주의가 된다. 성경은 어느 곳에서 이런 사상을 말하고 있지 않다. 구원에 있어서 그 주도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독수리 날개’ 비교. 신 32:10-12.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에 대한 비유.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훈련시키듯이.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은 때로는 혹독한 훈련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강한 군사로 세워지는 가정. 이것이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강한 군대가 될 수 있었다. 훈련 없이 강해질 수 없다.

 

19:5(야훼의 소유가 된 이스라엘)
여호와 하나님은 온 우주의 하나님이라는 것.

 

소유(히. 세굴라)
왕의 보물(전 2:8; 대상 29:3). 존귀한 보석. 하나님께 보석과 같은 존재라는 의미.
소유라는 히브리어는 세굴라. 세굴라는 왕의 보물을 가리킨다. 왕들이 존귀하게 생각하는 가치 있는 물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리켜 내 소유다, 내 세굴라라고, 보석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이다.

 

종살이하던, 노예근성에 찌들어 있는 사람들인데 노예로 보지 않고 보석으로 보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나를 향해서 너는 내 보석이라고 보고 계시다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이 나를 무엇으로 보시는지가 중요하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은 여기서 나온다. 이 세상의 어떤 존재보다 귀하게 보신다는 것이다. 나를 귀하게 봐야 한다.

 

 조건: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순종) 내 언약을 지키면”
 결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언약을 성실하게 준행한다는 조건하에 맺어진 언약이다. 따라서 이 계약의 존속 여부는 이스라엘의 순종 여부에 달려있다. 이스라엘의 순종 여하에 따라 이 언약은 깨어질 수도 있는 언약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구약 성경에서 나오는 노아, 아브라함, 다윗의 언약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셋은 무조건적 언약. 시내산 언약은 조건적 언약. 깨어질 수도 있는 언약. 깨어져서 다시 만들어진 언약이 새 언약이다. 조건을 제시하고 있다.

 

19:6(언약의 목적) 오경 전체의 핵심 구절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앞에서 살펴봤던 내 소유, 암 세굴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 이 표현의 다른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궁극적 목적이다. 이것 만들라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애쓰신 것이다. 애굽에서 불러내시고, 홍해 건너고, 광야 통과하게 하신 것이다.

 

제사장 나라
한마디로 섬김의 나라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고, 백성을 섬기는 걸로 부르심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 섬기고 열방 섬기라고 부르심 받은 나라., 이것이 제사장 나라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선민의식에 빠져서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이다. 다른 이방 백성들은 멸망받아 싸다, 우리는 선택받은 민족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심...

 

그 이후의 내용은 어떻게 이 약속이 세워지기 위해서, 이스라엘을 부르신 하나님의 의지가 실현되어 나가는지를 보여준다. 레위기가 있어야 세워져 나간다. 민수기는 만들어져 가는 과정. 여행 모티브. 구원받은 사람에서 제사장 나라로 세워져 가는 여정. 신명기는 하나님의 그 목적이 일차적으로 성취되었다. 신 14:2,


오경 전체는 이런 내러티브적인 구성을 가지고 짜인 책이다. 특별히 오경 핵심은 19:5-6절. 이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스라엘만을 위한 부르심은 아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불렀다는 것이 오경의 중심이다. 왜 이스라엘을 부르신 것인가의 내용이 창세기 초반에 나오는 것이다. 인류의 타락, 멸망받을 수밖에 없는 이 세상을 에덴으로 다시 부르기 위해 이스라엘을 부르신 하나님. 이것이 오경의 핵심이다.

 

백성의 응답(19:7-8)

모세 = 언약 체결의 중보자. 비교. 예수 그리스도 = 새 언약의 중보자.
시내산 언약은 모세가 언약 체결의 중보자 역할을 한다. 마치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사람처럼. 새 언약은 그 중계자가 예수님으로 되어있다. 옛 언약은 그 중계자가 모세. 이것만 봐도 옛 언약보다는 새 언약이 훨씬 더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현현에 대한 준비(출 19:9-15)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준비.

준비 없이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갈 수가 없다. 그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 우리 피조 세계와 완전히 구별된 존재이기 때문에(전적인 타자),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간격이 놓여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렇게 하면 너희들이 나를 만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아무도 하나님을 가까이할 수 없고, 뵐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방법대로 하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 이스라엘의 특권은 이 구약 시대에 한해서 인류의 수많은 백성들 가운데 유일하게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특권을 만났다는 것이고, 그것이 제사 제도이다.

 

성결(19:9-10)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9절)’
빽빽한 구름- 흑암.
신명기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하게 위함이다. 단지 음성만 들은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계시하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상이다.

 

19:10(옷을 빨게 함) ⇨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준비.
옷을 빠는 것은 정결의식이다. 구약 성경에서 나와 있는 정결 의식들을 보면, 부정을 깨끗하게 하는 방식이 물로 씻는 것. 정결 의식.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준비로 가장 중요한 것은 부정을 제거하는 것이다. 거룩과 부정은 공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와 부정 가운데 임할 수 없으시다. 그래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만나기 위해서는 죄의 문제, 부정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의 보혈로 이 두 가지가 해결되었다. 그분의 보혈의 공로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불편하게 옷을 빨고.. 그럴 일 없어졌다.

 

경계를 정함(19:11-13)

11절 “...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12절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거룩을 침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거룩의 양면성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잘못하다 재앙이 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의하면 거룩은 축복이고 생명이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합당한 방식으로 하나님께 나가야 된다는 것이다. 거룩도 모르고, 거룩하신 하나님 어떻게 가까이해야 할지도 모른다면 축복은커녕 저주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회중에게 그걸 가르쳐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야 회중이 하나님의 축복과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멀어지는 삶을 살지 않게 해야 한다.

 

13b절 “나팔(히. 요벨)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

나팔소리-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상징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표현. 구약의 전통은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나팔소리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여인을 가까이하지 말 것(19:14-15)

레위기 제의 규정에 따르면 성관계는 당사자를 하루 동안 부정하게 한다. 그래서 금하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현현(출 19:16-25)

신 현현의 현상과 야훼의 강림(19:16-19a)

A. 나팔 소리(16a절)
B. 백성이 떪(16b절)
C 야훼의 강림(17-18a절)
B' 온 산이 떪(18b절)
A. 나팔 소리(19a절)

19:16(신 현현의 현상들)


이 나팔소리는 사람이 부는 나팔소리는 아닌 것 같다. 전형적인 하나님의 현현의 현상.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16a절)’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16b절)’


신적인 두려움, 경외감.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때 보이는 인간의 반응. 성경 안에 보면 여러 군데 나옴. 신적 두려움. 환경으로부터 오는 두려움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두려움. 이때 느끼는 인간의 감정은, 자신의 죄성, 무가치함이다. 하나님 앞에 서면, 내가 그런 느낌을 가진다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이 보이는 반응이 그렇다는 것이다.

 

아무리 의로운 사람이라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가면 형편없는 것이다. 그러니 겸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사람은 겸손하게 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의 고백, 죄인 중에 괴수다. 실제로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그만큼 사도 바울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살았다.

 

19:18(야훼의 강림) 비교. 시내산 떨기나무 가운데 임하심(출 3장).
불 가운데서 강림하심. 하나님은 대개 불 가운데, 연기나 구름의 현상을 수반하는 방식으로 임하신다. 다른 말로 영광이라고 부른다. 거룩과 영광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볼 수 없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눈에 안 보인다. 그렇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수반되는 현상들이 있다. 대개 불이나 구름, 연기. 구약시대 때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이곳에 임재하셨다. 그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고, 그것을 영광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임하심(19:19-20)

19절 “... 하나님이 음성(히. 콜)으로 대답하시더라.” 비교. 왕상 19장. 세미한 소리(히. 콜)
하나님은 자신을 말씀으로 계시하신다. 이것이 야웨 신앙의 핵심이다.


20절 ‘...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모세를 그리로 부르시니’
모세만 거룩하신 하나님 가까이 간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모세의 특별한 위치를 말하고 있다. 반면에 백성들은. 7절에 보면, 산기슭에 있다. 모세가 위대한 것은 그가 누렸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라는 것이다. 이것이 모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이다. 그의 온유함이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성품이 온순하다는 것이 아니라, 충성심과 친밀함을 의미.

 

하나님과의 거리가 우리의 크기를 결정한다. 하나님과 나누는 친밀한 교제. 이런 비슷한 경험을 누리며 살았던 사람이 잇다. 다윗이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내 종이라는 표현 쓰지 않으신다. 내 종 다윗. 다윗이 그의 행실로만 그렇게 위대한 것 없다. 간음죄, 살인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인물로 칭송받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 하나님 앞세워 다윗의 신실함. 하나님과 누렸던 친밀한 관계. 

야훼의 경고와 모세의 순종(19:21-25)

‘와서 보려고 하다가 많이 죽을까 하노라(21절)’
오토- 거룩의 개념이라는 책.
⇨ 두려움의 신비(tremendum mysterium). 거룩을 경험한 인간의 반응


두려움의 감정과 신비의 감정. 복합적인 감정.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험할 때 이 상반된 경험을 같이 느낀다는 것이다. 구약의 개념으로는 경외- 두려워하며 사랑하는 상반된 감정. 한편으로는 두려워하면서, 사랑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가지고 섬길 때 온전한 섬김이 되는 것이다.

 

‘여호와에게 가까이하는 제사장들(22절)’


처음으로 제사장을 언급한다. 아직 세워지지 않았는데. 레위기 8장에서 세워지는데. 여기서는 임시 제사장. 제사장이 세워지기 전까지 임시로 그 역할을 하는 사람들... 하나님의 거룩을 지키는 파수꾼들.

 

19:24(아론과 함께 올라감) ⇨ 아론의 특별한 위치.
오경 문맥상, 앞으로 아론이 대제사장이 될 것을 준비하는 의미로 볼 수 있다.

 

19:25(모세의 순종)
“모세가 백성에게 내려가서 그들에게 알리

 

시내산과 성막의 유사성

① 세 부분으로 구분됨

② 접근 가능한 사람들의 구분

19장 정리

은혜로 얻는 구원

이의 구원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기인한 것이다. 출애굽은 이 부분을 강조한다. 이가 어떤 자격이 있어서 된 것이 아니다. 애굽에서 나올 때도 자발적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억지로 끌려 나오는 것처럼 되어있다. 출애굽기의 구원 사역은 인류 구원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구원도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에 기인하고 있다. 은혜가 먼저다.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

이를 부르신 이유.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부르기 위해. 이의 존재 이유. 이것을 상실해 버리면 존재 이유가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를 그냥 멸망시켜 버렸다. 거룩한 백성인데 우상 숭배, 제사장 나라인데 선민의식에 빠져있다. 그게 바벨론 포로. 교회 공동체는 새로운 공동체,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 그래서 교회의 생명은 거룩성이다. 이것을 상실해 버리면 교회 존재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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