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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출애굽기 23장 공정한 재판에 관한 규정

by 독거할매 2021. 4. 6.

공정한 재판에 관한 규정(출 23:1-9)

● 1-3절: 증인의 관점.
● 6-9절: 재판관의 관점.

 

1) 증인의 역할에 대해(1-3절)

23:1(거짓된 증언 금지)

유언비어, 언어폭력.
cf. 레 19:16
‘거짓된 풍설을 퍼뜨리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위증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

 

위증의 문제. 증인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 생각해 보면, 증인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볼 수 있다. 거짓된 증인들은 공범들이다. 증인은 자기가 본 것을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책임과 그럴만한 용기가 있어야 한다.

23:2(다수의 편을 들지 말 것)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군중 심리에 휩쓸려서 위증, 힘 있는 자의 편에 서려고 하는 것. 인간의 연약한 본성은 그런 것 같다. 본디오 빌라도의 예. 예수님이 죄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으면서도, 군중 심리에 그대로 휩쓸려 가는 것. 그래서 지금도 본디오 빌라도는 죄인이 되었다.

23:3(가난한 자를 두둔하지 말 것)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해서 편벽되이 두둔하지 말지니라.”


증인은 그냥 자기가 알고 있는 것, 본 것만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판정의 원칙은 공정, 공의다. 어느 쪽 편을 들면 안 된다. 가난한 자에 대한 배려 중요하지만 재판정에서는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이다.
증인의 의무

원수의 가축에 대한 배려(4-5절)

원고와 피고 사이의 관계.

기초적인 원수사랑의 마음


●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이 들더라도, 그의 가축까지 미워해서는 안 된다. 분쟁 해결의 계기로 삼을 수 있음.
● 원수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도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자비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감. 앞에서는 공의를 강조, 여기서는 자비를 강조. 공의와 자비의 적절한 균형. 이것이 하나님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사랑과 공의, 그것은 우리가 연마해야 할 하나님의 성품인데, 공의보다는 사랑이 좀 더 중요한 것 같다.

재판관의 역할(6-9절)

재판관의 거울과 같은 것. 재판관들이 매일 드려다 보고 점검해야 한다는 것.
본문대로 재판관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늘 들여다보라는 것이다.

23:6(편파적이 되어서는 안 됨)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재판정의 원칙은 공의. 정직성.

23:7(정직성)

“거짓 일을 멀리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23:8(뇌물 수수 금지)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우리나라에 법조계의 비리는 대부분 이것과 관련되어 있다.

 

오경의 재판정의 공의

● 레 5:1-2
● 레 19:15-16
● 신 16:18-20
● 신 19:15-20(증인의 역할)

사회는 공의로운 사회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고, 핵심적 역할을 하는 것이 재판정이기 때문이다. 판사와 증인. 우리는 이것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크리스천 법조인들이 많이 나와서 우리 사회를 공의로운 사회로 만드는데 많은 역할을 했으면 한다.


예언자들이 외친 사회정의.
하나님의 통치는 의와 공의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의는 히브리어로 체데카, 공의는 미쉬파트.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의 통치. 이것이 예언자들이 말한 의와 공의. 지도자에 있는 사람들이 이것을 실현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대변한다고 보는 것이다.

23:9(이방 나그네를 부당하게 대하지 말 것)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은즉 나그네의 사정을 아느니라.”
⇨ 출애굽 정신의 실천.
안식년과 안식일 규정(출 23:10-13)
종교적 규례

안식년 규정(23:10-11)

인간이 안식년을 지키는 것처럼, 땅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하고 그 과정에 인간이 도와주어야 한다. 휴경년. 이것은 땅이 산성화 되는 것을 방지해준다. 장기적으로 더 많은 수확을 얻게 해 준다. 장기적으로는 유익.
주일 지키는 것도 장기적으로 유익이다. 그것이 비록 나에게 손해인 것처럼 보이더라도 말씀이기 때문에 그것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원리이다. 하나님 나라. 산상수훈.


11b절 ‘네 백성의 가난한 자들이 먹게 하라. 그 남은 것은 들짐승이 먹으리라.’
⇨ 인도주의 정신.
안식년 기간 동안은 파종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스스로 나는 것들, 열매들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고 살 양식이다. 심지어 들짐승들에게도 혜택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땅에 살아가고 있는 동물들까지도 다 보살피신다는 의미가 여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약속의 땅의 주인은 결국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땅 주인이 일하지 말라면 일하지 않는 것이다. 주인이 일하지 말라는데 하면, 그것은 세입자의 자세는 아닐 것이다. 우리는 이 땅의 세입자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다. 청지기 의식.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내 생명까지도 내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값(예수 그리스도)을 주시고 사셨다. 내 생명권이 이전되었다. 다 그분의 것이다. 그분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다.

 

안식일 규정(23:12-13)

23:12(안식일의 인도주의적 성격)

여종과 나그네도 쉬게 하라. 쉼이 없는 사람들 그들에게도 쉬게 해라.

23:13(다른 신들의 이름을 부르지 말 것)

절기에 관한 규정(출 23:14-19)

주로 농사와 관련된 절기만 다루고 있다.
14절 “너는 매년 세 번 내게 절기(히. 하그)를 지킬지니라.”
하그라는 말은 순례 절기를 가리킨다. 중앙 성소를 가서 지키는 절기다. 아직도 모슬렘들은 이것을 ‘하지’로 지킨다.

① 무교절(15절)

아빕월- 1월, 정한 때-

누룩 없는 떡을 먹음.
‘맛짜’라고 한다. 누룩은 구약 성경에서 부패, 유혹, 타락을 상징한다. 대부분의 경우 누룩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누룩이 없는 떡을 먹는 것은 하나님 백성들의 삶에 부패, 유혹, 타락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누룩이 없는 떡처럼 성경한 삶 살아야 한다. 유월절은 구원받은 절기.

 

구원 받은 다음에 곧바로 성화의 삶이 시작되는 것이다. 구원받았으면 거룩하게 살아가는 삶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큰 의미에서는 거룩하게 되는 것도 구원이다. 구원을 너무 협의로 생각하는 것 같다. 구원은 거룩하게 되는 것까지 포함되어 있다.


‘빈손으로 내 앞에 나오지 말지니라’
무교절 기간 안에 초실절이 끼어 있다. 유월절 지나고 첫 번째 맞이하는 주일이 초실절인데, 보리 추수를 알리는 절기. 그래서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는 것. 첫 수확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오라는 것.

② 맥추절(16a절)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맥추절’ - 히. 하그 하카치르.
‘첫 열매’ - 밀의 첫 열매.


팔레스틴의 추수는 보리 추수로 시작해서 밀 추수로 봄 추수가 마감된다. 봄 추수를 마감하는.
한국 교회는 지금 절기를 지키는 걸 보면 마구잡이다. 오순절도 지키고, 맥추절도 또 지킨다. 같은 절기인데 따로따로 지킨다. 헌금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까. 굳이 감사절로 지키려면 전반기 감사, 후반기 감사 이러면 좋을 것 같다. 지키더라도 성서적 근거가 있어야겠다.

③ 수장절(16b절)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수장절’ - 히. 하그 하아시프. 거두어들인다.


계약 법전의 절기들은 농경 생활과 관련된 이름을 쓴다. 굳이 농경 생활과 관련된 용어들을 쓴다. 이 수장절은 후반기 추수감사절이다. 팔레스틴 추수는 봄철에는 보리와 밀, 가을철에는 포도, 올리브, 과실 거둬들이는데, 수장절 때 과일 추수를 기념해서 지키는 절기다. 그러고 나서 모든 절기가 마친다. 그래서 수장절이 가장 크게 지킨다. 다른 말로 초막절이라고 부른다. 광야 시절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을 치고 지낸 것을 기념하는 것.

 

이스라엘의 3대 절기.
유월절, 칠칠절, 초막절은 유목민 요소와 농경민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온 인류의 하나님이다. 유목민의 하나님일뿐만 아니라 농경민의 하나님이다. 구원의 성격, 문화적 성격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출애굽 의미, 농경 생활과 관련된 요소도 포함되어 있다. 구원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들은 따로따로 생각했다. 구원은 여호와 하나님이 주슨 것이고, 축복은 바알 신이 주는 것으로. 그래서 축복이 탐이 나니까, 여호와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 신도 섬기고.
그게 아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도 되고 축복의 하나님이시다. 바알이 주는 것이 아니다.
제사 규정(출 23:18-19)

23:18(누룩 금지)

누룩의 상징적 의미
절기 때 드리는 기름은 당일에 처리하게끔 되어 있다.

23:19 a(하나님께 드릴 것)

“네 토지의 처음 거둔 열매의 가장 좋은 것을 가져다가... 드릴지니라.”
⇨ 하나님 = 땅의 주인 + 왕.
왕을 왕답게 대우해야 한다. 좋은 것이라는 것은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값이 나가는 것이라기보다는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온전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제물보다는 하나님께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시간인 것 같다. 시간보다는 마음인 것 같다.

23:19 b(염소 새끼를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 것)

● 인도주의적 규정
● 이방 종교의식 금지 차원.
너무 잔인하다는 것이다. 어미가 보는 앞에서 새끼를 죽이는 것도 하지 마라.

약속과 경고(출 23:20-33)
율법을 지킬 것에 대한 권고.
가나안 땅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언급하고 있다.

 

사자를 보내신다는 약속(23:20-26)

23:20-23(사자의 역할)

20절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이르게 하리니”

‘사자’(히. 말라크)
전령, 혹은 천사를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에서는 말씀의 전달자, 전령의 역할이 아니라, 보호자, 안내자의 역할을 언급하고 있다. 사자가 인간적인 존재로 볼 수 있고, 신적 존재로 볼 수 있다. 구약 성경에서 사자가 여호와 자신일 경우가 많다. 구약 성경에서 사자는 모호하다. 여기에서는 사자가 신적인 존재인 것 같은 인상이 강하다.
21b절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라.”


23절에 사자의 역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고 가나안 족속들을 쫓아내는 역할. 내 사자, 후반부에는 나는... 거의 하나님과 동일시하고 있다.

 

23:24-26(가나안 땅에서 백성의 책임)

① 이방 신들을 섬기지 말 것(24절)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그 땅에 우상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것. 우상은 그 땅을 부정케 하는 요인이기 때문에.


② 야훼를 섬길 것(25-26절)
이방신들을 제거하는 것이 소극적 차원이라면, 야훼를 섬기는 것은 적극적 차원.


● 조건(25a절)- 섬겨라
● 결과/약속(25b-26절)- 여호와가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병을 제하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앞으로 주실 축복들. 이런 것들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그렇지만 더 좋은 축복도 있다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눈에 보이는 물질적 축복보다도 더 좋은 축복을 얻기를 소망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의 임재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가장 낮은 단계의 축복, 물질부터 가장 높은 단계의 축복, 하나님의 임재. 이것을 임마누엘이라고 한다. 눈에 보이는 것을 너무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것들은 풍성한 삶이다. 생명이다.

 

생명에 대한 약속을 주실 때는 단순히 내 목숨이 부지되는 그 수준이 아니다. 풍성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사는 수준의 단계. 이 약속. 구약 성경에 의하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처럼 사는, 죽었지만 여전히 그림자처럼 존재하는 사람이 있다. 성서적이다. 우리는 죽어도 잔다. 자는 것이다. 언젠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주님께서 오실 때 우리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깨어나는 것처럼 일어나는 것이다. 부활하는 것이다. 아나시스 타스(원- 위로 똑바로 선 자들, 부활한 자들 의미)

왕벌을 보내신다는 약속(23:27-31)

하나님의 위엄이 임할 때 나타나는 현상. 거룩한 전쟁에 참여할 자격으로 그래서 하나님께서 두려움이 없는 사람들,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신다는 그 믿음이 없이는 거룩한 전쟁을 싸울 수 없는 것이다.

 

23:27-28(왕벌의 역할)
27절 “내가 내 위엄을 네 앞서 보내어...”

‘위엄’(히. 에마) - 두려움.

28절 “내가 왕벌을 네 앞서 보내리니... 네 앞에서 쫓아내리라”

23:29-30(조금씩 쫓아내실 것)
하나님의 약속이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져야 한다.


23:31(땅의 경계)
● 홍해에서부터 블레셋 바다-
● 남부 광야에서부터 유브라데 강.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겠다고 하는 땅의 약속이다. 이것이 다윗과 솔로몬 왕 시대의 영토이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거의 근접한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았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을 하나님께서 이루신 것이다. 그렇지만 일시적이다. 땅에 대한 약속은 종말론적 약속으로 미루어진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땅, 더 좋은 땅, 하나님의 나라이다. 산상수훈은 팔복, 땅으로 시작한다.

경고(23:32-33)

32절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들과 언약하지 말라”
그들과 언약하는 것- 결혼
그들의 신들과 언약- 그들의 신을 섬기는 것.
통혼하는 것을 금지. 그 이유가 33절에 나와 있다.

 

33절 “... 네가 그 신들을 섬기면 그것이 너의 올무가 되리라.”

신앙적인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함.
이방인과의 결혼 금지는 그런 차원에서 보아야 한다.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면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장려해야 할 결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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